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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근원적 요인이다. 이상 조선일보의 큼직큼직한 죄악을 열가지로 살펴보았다. 이 이외에도 그들의 무책임한 반민주적, 반민족적 행태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이쯤해두고 우선 신문재벌 방씨일가의 중시조로 일컬어지는 계초 방응모에 대해 알아보자. 본래 방응모는 머리가 좋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는 거의 맨손으로 광산사업을 시작했다. 운좋게 금맥을 발견, 떼돈을 벌었다. 1932년에 방응모가 거머쥔 돈이 135만원. 지금 돈으로 치면 1350억원이다. 1350억원을 거머쥔 방응모는 광산사업을 그만두고, 20만원, 지금 돈 200억원을 투자하여 조선일보를 인수한다. 또 12만원, 지금 돈 120억원을 투자하여 태평로 일대에 1400평의 땅을 사서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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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교수 최상룡과 결혼하였다. 최상룡의 아버지는 박정희정권 하에서 국회의원, 국회 건설위원장을 지낸 최두고다. 부산 동성학원 이사장이기도 하다. 서성환의 네째 딸 서미숙은 부도난 우성그룹 부회장 최승진과 결혼하였다. 서미숙은 리베라 호텔의 고문으로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비록 회사가 망했지만 굶지는 않을 것이다. 나보다는 잘 살겠지. 서성환의 둘째 아들 서경배는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농심그룹 신춘호 회장의 딸 신윤경과 결혼하였다. 이로서 조선일보는 막강한 롯데패밀리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역시 조선일보 혼맥의 백미는 방상훈의 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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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가를 논할 때 세밀하게 따져보자. 저 완전 공감해요. 어쩜 저랑 똑같은 생각을.... 저는 몇일전에 보는데 군부대에 있는 남자에게 면회가는게 가장 남자들 기억엔 많이 남는다고 하니까 나래가 요즘 남자 연애인들 군복무중인 사람들 누구냐고 하니까 갑자기 성훈이 "야~!" 그러니까 나래가 "인맥관리~" 이러더라고요... 저는 그 장면을 보고 뭐지..했어요 ㅋㅋ 나혼자 산다 보면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드네요. 성훈이 나래집에 디제잉 하러갔을때. 냉장고 한번 스캔한뒤 갓김치통을 바로 가져오는데. 그게,,, 뚜껑을 열어보지 않고서야 절대 갓김치라는걸 알수 없는데.. 이장우편에서도 군대면회 애기에,, 성훈이 반응하는것도

역할은 방일영의 동생 방우영이 맡았다. 나치정권 선전상이던 괴벨스와 같이 국민 우민화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던 전두환의 심복 허문도를 도와 국보위 입법위원으로 참여하여 희대의 언론통제 악법인 '언론기본법'을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살인마 전두환은 조선일보에 의해 민족의 영웅이며, 구국의 지도자로 둔갑하였다. 광주학살이 끝난후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이 떠들었다. '국군이 절대다수 광주시민, 곧 국민의 일부를 보호하기 위해 취한 이번 행동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음은 당연한

곳이 없었다. 우리는 죽으라면 말없이 죽는 시늉을 하지 않으면 안될 환경에 놓여 있었다.'고 써 있다. 물론 변명과는 달리 방응모의 친일은 자기방어의 한계를 넘는 행위였다. 부패와 타락이 그 본질인 사회에서 깨끗한 사람은 좀 거만하게 굴어도 된다는 김남주 시인의 시도 있지만 어쨌든 방응모가 겪었던 시대적 상황에 내가 처해보지 않았으니 그보다 도덕적 우위에 서서 왈가왈부할 입장은 못된다. 그러나 설령 그런 실수를 했더라도 방응모 자신과 그 일가 그리고 조선일보가 보다 통렬한 자기반성과 성찰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방일영사장과 함께한 어느 술자리에서였다.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박 의장이 한 여배우의 손을 붙잡고 밴드에 맞춰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얼마나 재미있는 광란의 도가니가 펼쳐졌는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술로써 맺어진 의리가 가장 끈끈하다. 명문가문 이후락 편에서 언급했듯이 신진자동차의 김창원, 극동건설의 김용산, 대농의 박용학, 한국화약의 김종희, 호남정유의 서정귀 등은 이런 배경으로 이후락 5인방으로 불려졌고, 물론 그 주변에는 방일영이 있었다. 여기에 방일영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던 SK 창업자 최종건이 빠지면 안된다. 수원지방의 별 볼 일 없는 직물회사였던 선경이 급성장한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결탁하여 급속하게 성장한 조선일보는 지금도 전사적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의 찬양에 열을 올린다. 3. 최대부수의 신문권력을 악용하여 민주화인사를 탄압하고 얼토당토한 사상검증을 하는 것 김대중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김정남, 한완상, 최장집 등을 황당한 빨갱이 여론몰이로 낙마시켰다. 4. 국가안보를 상품으로 팔아먹는 반민족적 행태를 서슴치 않는다는 점이다. 전쟁위협, 공포감 조장, 적대감, 긴장감을 유발시켜 여기에 편승해 신문장사를 한다. 5. 악랄한 지역감정 조장이다. 특히 호남인에 대한 차별이 극단적이다. 그래서 민주개혁세력은 조선일보를 반호남의 소굴이자 영남패권주의의

자신이 운영하는 월간지에 발행인 방응모의 이름으로 스스로 기고한 글을 봐도 친일파 방응모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대일본제국 2천 6백년의 빛나는 역사에 청렴강직한 대화정신과 팔굉일우의 이상으로써 닦아놓은 성업은 일계직통의 천황어능위를 봉하여 우리 국민은 이 성은 속에 만폭적 희열을 느끼고 있다.... 천황, 황후 양 폐하의 성수무강 하옵심을 삼가 비옵고....' 방응모가

더한 퇴영적인 결과를 유발하기에 더욱 그렇다. 방응모의 친일행각은 6.25가 발발하여 북한 인민군들에게 납북되는 불행한 결과로 끝을 맺었다. 방응모는 이라는 책에 의하면 납북 도중 이회창의 고향으로 유명한 황해도 서흥군 부근에서 미군의 공습을 받고 사망하였다. 미군 전투기 4대가 날아들어 닥치는대로 폭탄을 떨어뜨리고 기총사격을 하는 바람에 노근리의 유족처럼 민간인인 방응모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이 조선일보에서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은 1991년에 북한 정무원

처음부터 친일파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일종의 장삿꾼이다. 언론사를 경영하면서도 장삿꾼적인 기질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친일파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시기적인 변화에 편승하였던 것이다. 반도 최고 갑부에 해당되는 방응모가 먹고 살기 위한 친일을 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적극적인 친일행위자로 간주할 수 밖에 없다. 인간적으로 좀 가엾기는 하다. 방응모가 해방이 된 이후 조선일보를 속간하면서 쓴 속간사를 보면 '우리는 입을 가졌으나 생벙어리 행세를 하여야 하였으며 할 말은 많았으나 호소할